우리나라 “고속철도의 환경 소음 기준" 에 대해서 조사해봤다.
1. 우리나라의 고속철도 도입 사업
우리나라의 고속도철도 도입은 1970년대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나, 당시에는 우리나라 고속철도 기술수준 및 비용 대 효과 측면 등을 고려해볼 때 타당성이 부족하여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1989년 인천국제공항 건설사업과 함께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이 2대 국책사업으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속철도 차량 및 제반 시스템에 대한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사업을 국내개발 대신 국외도입 방식으로 추진하게되었다. 국제입찰에는 ①일본의 신칸센, ②독일의 ICE, ③프랑스의 TGV(테제베)가 참여하여 경합을 벌였다. 일본의 신칸센은 기술이전에 소극적이었기에 일찌감치 경쟁에서 탈락하였고, 독일과 프랑스가 경합한 끝에 1994년 6월 14일 철도차량의 속도, 운용 경험, 기술이전 및 금융지원 측면에서 적극적이었던 프랑스 TGV의 기술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한다.
2. 고속철도의 환경 소음기준 수립 과정
고속철도 차종이 프랑스 TGV로 결정된 것은 94년 6월 이었으나, 철도차량 운영 소음기준은 92년 6월에 이미 환경부-건설교통부 간 환경영향평가 합의에 의해 결정되어있었다. 철도 차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소음기준 등 기타 사항들은 조속히 결정하여 방음벽을 포함한 제반 건설사업은 빠르게 추진 및 마무리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92년 합의 당시 적용키로 한 기준은 일본의 신칸센에서 사용하는 환경소음 기준이었고, 94년에 선정된 프랑스 TGV의 소음기준은 그와 달랐다는 것이다. 신칸센은 최고소음도(Lmax) 방식으로 주거지역 70 dB, 상공업지역 75 dB의 기준치를 적용하지만, TGV는 등가소음도(Leq) 방식으로 주거지역 65 dB, 상공업지역 70 dB의 기준치를 적용한다. (두 기준치를 아래 표에 비교하였다.)
철도 차량 | 지역 구분 | 소음도 기준치 | 소음도 적용방식 |
신칸센 | 주거지역 | 70 | 최고소음도 Lmax [dB(A)] |
상·공업지역 | 75 | ||
TGV | 주거지역 | 65 | 등가소음도 Leq [dB(A)] |
상·공업지역 | 70 |
결국, 92년 소음기준을 합의했던 환경부와 건설교통부가 이견을 보이게된다. 철도차량 차종이 TGV로 결정되었으니, 건설교통부는 TGV 소음기준인 등가소음도(Leq) 기준으로 변경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열차 차종이 변경되었다는 사안만으로는 이미 합의한 환경영향평가를 재협의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환경부는 기존 최고소음도(Lmax) 적용 입장을 고수했다. 양 부처의 입장 대립은 약 5년 이상 계속되었고, 고속철도 방음벽 공사추진에 차질을 초래했다고 한다.
99년 9월 15일에 이르러 드디어 환경부와 건설교통부가 합동으로 소음진동 분야의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고속철도 소음기준설정을 위한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고속철도 소음기준(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하였다.
공동조사단은 99년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45일간 경부고속철도 방음벽 시공현장과 일본 신칸센 및 프랑스 TGV 현지 방문을 통하여 국내외 소음기준을 비교 검토하여, 우리나라의 고속철도 소음기준(안)을 설정하고 12월 4일 정부에 건의하였다. 94년 6월 이후로 약 5년 이상 지속되어온 양 부처간 대립이 드디어 종식되고 새로운 합의를 맞이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공동조사단이 제안한 고속철도 소음기준(안)에 따르면, 고속철도 일반구간은 개통시 63~68 dB(A)를 적용하며, 시험선 구간(경부고속철도의 경우 천안~대전 구간)은 개통시 65~70 dB(A)를 적용한다. 그리고 개통 15년 이후의 장래목표치는 모두 60~65 dB(A)로 설정하였다. 단, 모든 소음도 기준은 “등가소음도” 방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대상지역 | 시험선 외 구간 | 시험선 구간 | ||
개통시 | 개통 15년 이후 | 개통시 | 개통 15년 이후 | |
주거지역, 녹지지역, 준도시지역중 취락지구 및 운동/휴양지구, 자연환경보전지역, 학교/병원/공공도서관의 부지경계선으로부터 50미터 이내지역 | 63 | 60 | 65 | 60 |
상업지역, 공업지역, 농림지역, 준농림지역 및 준도시지역중 취락지구 및 운동/휴양지구외의 지역, 미고시지역 | 68 | 65 | 70 | 65 |
※ 소음도 적용방식 : 등가소음도 (Leq(1hr), [dB(A)]) |
이 기준은 프랑스 TGV의 지중해선 소음기준(62~67 dB(A))에 상응하는 수준이고, 도로소음기준(68~73 dB(A)) 및 철도소음기준(70~75 dB(A))보다 강화하여 고속열차의 운행에 의해 주변 주거지역 등에 미치는 소음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기준에 따라 초기 경부고속철도 412 km 노선 중 14%인 56 km 구간에 대해서만 방음벽을 설치함으로써 고속철도승객의 조망권도 최대한 확보하였다고 한다.
3. 최대소음도(Lmax) 와 등가소음도(Leq)
고속철도 환경소음 측정 및 분석방법의 엄밀하고 정확한 표현은 차치하고서라도... 좀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최고소음도(Lmax)와 등가소음도(Leq)가 무엇인지 파악해봤다.
최고소음도(Lmax)는 전체 측정시간(1시간)동안 측정구역을 통과한 열차들(3대 이상)의 최고소음도(dB(A))의 평균을 의미한다. 식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반면, 등가소음도(Leq)는 전체 측정시간(1시간)동안 발생한 모든 소음 에너지를 시간적으로 평균하여 평가하는 방식이다.
설명을 위해, “가상 소음”을 만들어 아래 그래프와 같이 1초 동안의 소음변화를 표현해봤다. 그래프에서 직관적으로 볼 수 있듯이, 최고소음도(Lmax)가 등가소음도(Leq)보다 크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 이 내용은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최고소음도(Lmax) 및 등가소음도(Leq)를 이해하기 위해 쓴 것이며, 보다 정확하고 엄밀한 정의는 「소음·진동 공정시험기준」 중 「철도소음관리기준 측정방법」을 참고하기 바람. (law.go.kr에서 소음·진동 공정시험기준 검색))
4. 두 환경소음 기준치에 대한 고민
92년 기준과 99년 기준을 비교하면, 평가방식은 최고소음도(Lmax) → 등가소음도(Leq) 로 변경하면서, 기준치는 70~75 dB(A) → 63~68 dB(A) 로 낮췄다.(기준치가 각각 7 dB(A) 씩 낮아졌다.)
그렇다면, 두 기준 중 어느쪽이 더 엄격한 기준일까? 개인적으로 실제 고속철도 소음을 측정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관련 뉴스 기사를 참고해봤다.
2019년 전남 장성군 남면에 있는 내마마을에 사는 주민들의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이 마을 주민분들은 2015년 4월 고속철도가 관통한 직후부터 기차 소음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어떤 수준이길래 그런것일까?
2017년 7월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현장 환경소음을 측정한 결과, 주간 2회 측정값은 각각 54.5 dB(A), 55.6 dB(A) 였고, 야간 1회 측정값은 53.0 dB(A) 였다고 한다. 주거지역에 해당하는 호남고속철도 소음기준치는 60 dB(A) 이고, 각 측정결과는 모두 기준치를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깝지만, 측정값이 기준치를 만족할 경우 시설공단에서도 마을을 도와줄 뾰족한 방안은 없는 실정이다. 마을에서 호남고속철 관계기관에 청원서를 보내도, 돌아오는 답변은 "1시간동안 측정한 등가 소음에 따라 기준치에 미달된다." 였다고 한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순간소음은 주간 84 dB(A), 야간 94 dB(A) 로 측정됐는데 어찌 평균값만 따져 기준에 미달한다고 하는지 답답할 지경" 이라고 했다.
정확한 측정지점과 조건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뉴스 기사에 나온 숫자들만 토대로 뇌피셜을 펼쳐본다.
등가소음도(Leq)는 1시간동안의 전체 소음 에너지를 평균하기 때문에 「기차가 통과하는 순간의 소음」과 「기차가 통과하지 않는 시간의 배경소음」을 모두 포함하여 평균하게 된다. 그렇기에 기차가 통과하는 순간의 고(高)소음을 액면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최고소음도(Lmax)는 1시간동안 통과한 기차의 최고소음도를 모아서 평균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차가 통과하는 순간의 소음」 만을 가지고 평가한다고 할 수 있다.
위 기사의 전남 장성군 남면 내마마을의 경우,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로서 배경소음이 상당히 낮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고속철도 환경소음을 1시간 등가소음도(Leq) 기준으로 측정하면 이상할 정도로 낮은 수준의 소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래 그래프 처럼 주간에는 철도 통과소음과 28.4 dB(A) 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고, 야간에는 41 dB(A) 로 더욱 큰 괴를 보이는 것같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92년 기준치인 최고소음도(Lmax) 70~75 dB(A) 와 99년(현행) 기준치인 등가소음도(Leq) 63~68 dB(A) 중 어느것이 더 엄격한 기준치일까? 앞서 설명한 자료 및 사례를 기준으로 보자면, 최고소음도(Lmax)가 더 엄격한 기준치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전남 장성군의 사례는 최고소음도(Lmax) 기준을 적용했다면 여러가지 방음 조치가 적용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고... 어쩌면 아예 그 지역에 고속철도를 건설하지 못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등가소음도(Leq)를 최종적인 기준으로 선정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환경소음 뿐만 아니라 사업적인 측면 및 국제적인 기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아마도 등가소음도(Leq) 기준이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내 생각에도 등가소음도가 더 합리적이다.)
다만, 그 합리적인 판단 이면에 숨어있는 "사각지대" 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지금도 내마마을의 어르신들은 고속철도 소음의 피해를 실시간으로 받고 계실 것이다...)
5. 배경소음 보정에 대한 생각 (뇌피셜)
등가소음도(Leq)는 "배경소음" 까지 모두 평균처리하기 때문에, 최고소음도(Lmax)가 커서 소음 피해가 심하다 하더라도 그 지역의 소음은 기준치를 만족할 수 있다. 일종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게 된다.
현행 철도 환경소음 기준치는 "배경소음" 크기에 따른 "보정" 을 반영하고 있을까? 내 생각엔 아닌 것 같다.
「소음·진동 공정시험기준」 중 「철도소음관리기준 측정방법」을 보면, 배경소음도와 최고소음도의 차이가 10 dB(A) 를 넘으면 실제측정값을 그대로 등가소음도(Leq)로 사용하지만, 만약, 배경소음도와 최고소음도의 차이가 10 dB(A) 이하인 경우에는, 최고소음도(Lmax)측정값에서 특정 값(dB(A))을 빼주는 방식으로 등가소음도(Leq)를 예측하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계산식이 있음.)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배경소음도와 최고소음도의 차이가 매우 큰 경우에 대해서도 보정이나 특례적용이 필요해 보이지만, 그런 내용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미, 많은 개선 조치가 있지만, 내가 모르는 것일수도 있다.)
사람이 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느끼는 경우는, 평소에 그 사람이 위치한 곳의 배경소음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다. 평소에 배경소음도가 높은 곳에 살고 있다면 철도가 지나가더라도 조금 더 시끄럽다고 느낄뿐이겠지만, 평소에 배경소음도가 아주 낮은 고요한 곳에 살고 있다면 철도가 지나가는 소음은 불편함을 넘어선 "충격" 수준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내마마을" 같이 실제로 피해를 겪고있는 지방이 있으므로,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고민과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를들면,
배경소음과 최고소음도의 차이가 20 dB(A) 가 넘는 곳은 일종의 충격적인 소음 피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해당 구역만 등가소음도 대신 최고소음도를 적용한다거나... 아니면, 등가소음도의 기준 만족여부와 무관하게 방음벽 등을 설치한다든지...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기준 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저 각자의 불편함을 일부 양보하며 "합의" 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그 기준으로 인해 누군가가 받게 되는 피해가 상식 수준을 벗어날 경우에는, 예외조항을 만들어 보완하거나, 기준 자체를 더 개선하는 방안을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6. 참고자료
(1)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2) 위키백과 경부고속철도 사업
(3)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경부고속철도 개통
(4) 정책조정사례 종합 (2000.6., 국무조정실)
(5) 철도소음 측정방법 개선을 위한 공정시험기준 개정(안) 마련 연구
(6) KTX 소음 피해 사례(뉴스기사, 장성투데이)
이 글은... 고속철도 환경소음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만 정리하려고 시작했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주절주절 할 말이 많아진 것같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간결하게 쓰도록 노력해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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